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교토대학 여러 학부에서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오늘 떳떳이 졸업식을 맞은 2,824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오이케 가즈오(尾池和夫) 전 총장님,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및 재학생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하는 날까지 여러분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신 가족 및 친척 여러분도 정녕 기쁘시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교토대학은 2022년 창립 125주년을 맞았습니다. 교토제국대학이 1900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125년에 걸친 본교 졸업생 수는 여러분을 포함해 228,767명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러분 대부분이 신입생으로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021년 4월은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 유행하던 중이라 커다란 제약 아래 대학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2023년 ‘5류’ 감염증으로의 하향 조정을 거쳐 그 유행도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만 3년 이상에 걸친 외출 자제 등 행동 제한은 국민의 생활 양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소셜 미디어 정보 교신의 극적인 확대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수님이나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직접 대면해서 대화하거나 논의하는 외에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이용한 교류가 한층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되지는 않으셨나요? 대학 강의에서도 온라인 수업 활용이 많이 보급되었으며, 뉴스 등도 신문이나 TV 등 매스 미디어와 함께 인터넷 플랫폼상의 다채로운 디지털 정보를 통해 세계 정치 상황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메시지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국가 정책과 관련된 커다란 정치적 결정이 정치 지도자 개인의 SNS를 통해 직접 전파되는 것이 이제는 일반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다양한 선거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전파가 나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인터넷을 통한 신속하고 광범위한 정보 전달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직접 연결시키면서 편견이나 차별에서 벗어난 분산형 사회, 즉 더 안전하고 더 투명하며, 그리고 더 민주적인 ‘테크노 유토피아’ 사회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현황을 보면 이 성선설적인 희망의 실현에는 그다지 낙관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면 SNS가 급속히 보급되는 가운데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SNS상 정보의 진실성과 허위성을 둘러싼 것입니다. 2018년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 359호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자들에 의한 매우 흥미로운 논문 ‘온라인에서의 진실과 가짜 뉴스의 확산’(Soroush Vosoughi, Deb Roy, Siman Aral(2018) The spread of true and false news online, Science, Vol. 359.Issue 6380, pp.1146-1151.)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들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1년 동안 Twitter(현 X)에서 300만 명이 450만 번 트윗한 126,000건의 자연재해, 과학, 정치경제 등 다양한 내용의 뉴스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신뢰성 높은 여러 제삼자 기관에 의한 팩트 체크를 통해 명백히 허위로 판단된 뉴스를 선별하고, 그 전파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그런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에 비해 70%나 리트윗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게다가 6배나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더 널리, 더 깊게 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가짜 뉴스에 대한 편향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확산 중 많은 수가 컴퓨터 속 봇(자동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행동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애당초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빨리 전달된다는 지적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 전신 기술 시대인 19세기부터 반복되어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1925년 이후 딱 100주년에 해당하는 해입니다. 가짜 뉴스 확산 문제는 과학 기술의 연구 주제에 그치지 않고 역사학이나 정치학 등 인문사회 계열 학문 분야가 다루어야 할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소셜 미디어로 얻은 정보는 수용하기 전에 ‘잘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입니다. 이는 사안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주어진 말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스스로 검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히 갖추어졌는지, 판단의 전제는 올바른지, 그 과정은 논리적인지, 호불호 등의 감정이나 인습 등 편향이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스스로 신중하게 검증하는 것입니다. 귀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 과정을 습관화함으로써 반사적, 독단적 판단을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판적’은 다른 사람을 비난, 공격하거나 논파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critical thinking이 ‘음미 사고’로 번역되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숙려해 판단했더라도 다시 한번 더 ‘그래도 내가 틀렸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인정하는 관용적인 정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는 ‘클리셰’라 불리는 틀에 박힌 말이나 상투 어구의 남용으로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이나 언론이 점점 빈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입니다. 예일대학 교수이자 역사학자인 Timothy Snyder는 저서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게이오기주쿠대학출판회, 2017년)에서 이런 틀에 박힌 말이나 상투 어구의 반복은 영국 작가 George Orwell이 1949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경고한 감시 사회를 상기시킨다고 말합니다. 이 당시 근미래 소설에서는 독재적 지도자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감시할 뿐 아니라 ‘뉴스피크’라는 새로운 어법이 도입된 상태입니다. 뉴스피크의 기본 원리는 언어를 철저하게 간소화해 어휘량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의 사고 범위를 축소하고 단순화하는 데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예를 들면 자유라는 단어는 ‘이 개는 이(곤충)로부터 자유롭다’라는 의미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며, 지적인 자유나 정치적 자유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말이 없어지면 그 말이 의미하는 개념도 언젠가는 없어지게 마련이라, 어휘의 감소와 개념의 빈약화는 언론과 사고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어 더 완전한 감시 사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현재 사회가 직면한 언론과 사고의 쇠퇴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Snyder 교수는 이에 독서라고 답합니다. 조금 전에 주어진 정보는 수용하기 전에 ‘잘 알아보라’고 말했는데, ‘잘 알아보는’ 것은 매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으로, 우리가 늘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잘 조사해서 쓴 문장을 읽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또 풍요로운 어휘들로 감정이 깃든 문장을 쓰고 싶다면 실력 있는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문장을 정독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지름길일 것입니다. 이런 독서는 내용 면에서도 형식 면에서도 빅 데이터를 가지고 생성형 AI가 찍어 내는 문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벌써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 4년 전 입학식에서 저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인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의 ‘책을 읽는 모습은 멋있다’는 말을 인용해 문예 작품에서 과학 논문에 이르기까지 정말 잘 쓰인 글을 정독하시라고 권해 드렸습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진부한 틀에 박힌 말이나 상투 어구가 아니라, 반드시 나만의 말로 표현하고 전파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드디어 실제 사회로, 또는 학술 연구의 세계를 향해 출발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식을 Commencement라고 하며, 성대하게 축복합니다. Commencement는 본래 ‘시작’, ‘개시’를 뜻하는 말인데, 대학 졸업식에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것이 ‘인생을 시작’하는 의식과 다름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에서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학생 시절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연구든 일이든, 가상이 아닌 실제 인간관계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Snyder 교수는 인터넷 시대의 교훈 중 하나로 ‘상대방의 눈을 보세요. 그리고 한담(small talk)을 나누세요.’라는 재미있는 제언을 합니다. 상대의 눈을 본다는 것은 상대가 거기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는 받은 시선을 되돌려주지 않지만, 인간은 시선을 받으면 좀처럼 무시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한담(small talk)이란 특별히 정해진 현안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대화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나와는 다른 의견이나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정면으로 부딪히며 토론해야 할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제대로 눈을 맞추고 우선 한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말일 겁니다. 코로나 시대에 답답하게 갇힌 상황 속에서 여러분은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인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극도로 제약을 받으면서 우리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모든 감각을 이용해 무의식 중에 그 자리의 모든 정보를 감지하고 이를 종합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합니다. 이런 신체적 실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empathy(공감)와 이해가 생겨나는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여러분의 긴 여정은 반드시 탁 트이고 곧게 뻗은 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매년 졸업생들께 말씀드렸듯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맞아 100년 이상 전에 발표된 캐나다 소설가 Lucy Maud Montgomery가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의 입을 빌어 말한 대사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I love bended roads. You never know what may be around the next bend in the roads”
“나는 길모퉁이가 있는 길을 참 좋아한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대체 어떤 풍경일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앞으로 여러분의 긴 인생에도 많은 ‘길모퉁이’가 등장하겠지만 반드시 지름길이나 가장 가까운 경로를 걸을 필요는 없으며, 좀 돌아가거나 먼 길을 택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이 실무의 길이든 연구의 길이든, 건전한 비판적 정신과 타자에 대한 섬세한 공감, 그리고 자유롭고 밝은 낙관주의를 겸비한 자립적인 사회인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길 진심으로 기대하며 제 축사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