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08명의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빈으로 오신 야마기와 주이치 전 총장님, 아오야마 메구미 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교토대학 학생으로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수험생활을 하며 열심히 공부해 오셨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분이 대학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배움의 내용과 방법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럼 대학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요?
저는 대학이란 여러분들이 여러분 안에 잠재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나’와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계기는 ‘만남’이며, 대학은 여러분에게 대단히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책이나 어떤 이벤트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만남을 통해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관심사, 흥미, 능력과 적성을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오랜 습관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감성을 갖고 두려움 없이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대학생 시절에 저는 영어 공부의 일환으로 당시 제게는 매우 난해한 면역학 원서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결국 이 복잡하고 교묘한 생물학의 메커니즘에 매료되어 졸업 후 면역학 연구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멋진 행운을 잡는 것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릅니다. 어떤 만남이 세렌디피티를 가져다줄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능한 한 많은 ‘만남’을 경험하고 지성과 감성을 단련하면서 스스로의 세렌디피티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운이란 준비된 마음에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의 축사에 이어서 여러분의 선배이신 아오야마 메구미(青山愛) 씨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해주실 예정입니다. 아오야마 메구미 씨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3월에 본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에 취직하여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미국 대학에서 1년간의 유학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봉사활동과 홈스테이 등 활발하게 해외 활동을 하면서 ‘언젠가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 국제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동경심이 커졌다고 합니다. 졸업 후 바로 취업한 방송국에서 아나운서와 뉴스 캐스터로서 TV를 중심으로 한 언론계에서 크게 활약했지만, 학창 시절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2017년 미국 외교대학원에 입학해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대외담당관으로 입사했습니다. 지난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난민 선수단과 함께 선수촌에 머물며 선수단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마자 바로 우크라이나로 들어가 현지 인도적 지원에 임했습니다. 현재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파견되어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주변국에서의 인도적 지원 활동을 맡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가운데 국제기구의 일선에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바쁘게 세계를 누비고 있는 아오야마 씨가 오늘 신입생 여러분을 위해 잠시 귀국해 직접 이야기를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저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현재 아오야마 씨가 말 그대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것도 학창 시절 해외에서의 경험과 현지에서의 다양한 만남에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니, 그녀가 잡은 행운도 우연이 아닌 세렌디피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아오야마 씨가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격렬한 전쟁이 수습되지 않아 많은 젊은이들이 정상적인 대학 생활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교토대학에서는 우크라이나 위기지원기금을 설립하여 우크라이나 키이우로부터 총 20명 이상의 유학생을 받아 왔습니다. 그들은 주로 학부 1~ 2학년 학생들인데, 교내외의 많은 분들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조국을 떠난 일본 생활에 익숙해져 매일 학업과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캠퍼스나 강의실에서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말을 걸어 친분을 쌓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멋진 만남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자, 자기 발견과 함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기표현’, 즉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스스로 쓴다’는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을 들여 가장 적절한 단어와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면서 탄탄한 문장으로 다듬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사고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검증하면서 갈고닦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선입견과 편견 등 외부의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적’은 타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부정적인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있어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지, 사고나 판단의 전제가 옳은지, 그 과정이 논리적인지, 호불호 등 자의적인 감정이나 편견 등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등을 스스로 신중하게 검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critical thinking을 ‘비판적 사고’가 아닌 ‘음미적 사고’로 번역하자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주어진 과제에 대해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단시간에 요령 있게 잘 정리한 글을 써주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여러분의 학업과 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글을 쓰는 것’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생성형 AI에 의해 자동 생성된 글에는 아무리 형식적으로 잘 갖춰진 글이라도 여러분 자신의 비판적 정신에 기반한 사고와 검증의 과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매우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의 잣대를 통해 검증하는 일입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자신의 충분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일정한 결론에 도달한 후에도 ‘그러나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즉,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표현’도 ‘자기주장’과 동의어는 아닙니다. 저는 현대와 같은 정보 과잉의 시대일수록 이러한 냉철한 반성적 사고와 정신의 유연한 관용을 지니고 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탄탄한 좋은 글쓰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글쓰기의 스타일은 종종 성격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학술과 연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텐데, 문장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면역학자이자 신작 노(能)의 작가였던 다다 도미오(多田富雄) 교수님은 유전학자 야나기사와 게이코(柳澤桂子) 박사님과의 왕복 서한에서 “(과학자는) 자신이 감동하며 발견한 것을 같은 감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잘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쓰셨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다양한 학술 논문을 읽게 될 텐데 훌륭한 학술 논문에는 독창적인 지식과 명쾌한 논리와 함께 발견의 흥분과 성취의 감격이 표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탄탄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지만 여러분의 정신력과 사고력을 단련시키고 효과적인 감정 표현력도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앞으로의 교토대학에서의 학생생활에서 여러분이 많은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고, 멋진 자신을 발견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축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는 <이슬 같은 몸이지만 – 왕복 서한 생명에 대한 대화>(다다 도미오, 야나기사와 게이코 저, 슈에이샤, 2004년)에서 인용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