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신 석사과정 2,242명, 전문직 학위 과정 316명, 박사(후기) 과정 948명 여러분,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사, 관계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을 대표하여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 또는 박사 과정에서 각자의 학위 연구에 종사하게 됩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대학원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학위’를 수여하기 위한 교육 과정으로서 창설되었고, 전 세계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이 새로운 대학원 제도는 이후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20세기에는 이렇게 배출된 많은 학위 소지자들이 시대 전환기의 지도층으로서 미국의 정치・경제・과학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학제 개혁을 통해 현재의 대학원 제도가 정비되어 왔습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정부가 대학원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원 중점화 정책을 추진했고 본교를 포함한 주요 대학은 대학원 중점화 대학이 되어 대부분의 교원들은 대학원 과정에서의 교육을 주된 임무로 맡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대학원생도 증가하여 현재 본교에는 1만 명에 가까운 대학원생들이 석사, 전문직 학위 과정,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학위 소지자 수는 아직 서구 주요국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석사학위 취득자 수에서 일본은 인구 100만 명당 2020년도 기준 579명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극단적으로 적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최근 연도 수치를 보면 영국이 5,459명으로 가장 많고, 독일 2,689명, 미국이 2,613명입니다. 또한 박사학위 취득자 수에서도 일본은 2020년도에 123명으로, 가장 많은 영국 340명, 독일 338명 등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비롯한 몇 가지 요인을 떠올릴 수 있으나, 적어도 일본에서는 아직 학위 소지자가 사회 다방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학계뿐만 아니라 정계, 관료계, 산업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더 많은 학위 취득 인재들이 널리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위 소지자에게 어떤 자질과 능력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교토대학의 학위 수여 방침(디플로마 정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석사과정은 폭넓고 깊은 지식을 갖추고 전문분야의 연구능력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담당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 그리고 ‘박사과정은 연구자로서 자립해서 활동하며, 고도의 전문 업무에 종사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그 기반이 되는 학식을 갖추고 있을 것’이 평가 기준입니다. 이 점은 서구 주요 대학의 디플로마 정책도 거의 비슷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러한 대학원 과정에서 각자 연구 과제를 찾고, 과제 해결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연구를 스스로 수행하면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많은 동료와 선배, 지도 교수와 토론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책임 하에 학위논문을 완성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디플로마 정책에 명시되어 있듯이 중요한 것은 개별 연구 내용은 물론, 여러분이 학위 연구 과정에서 경험하고 습득하는 이러한 과정의 총체, 즉 Transferable Skill Set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학위 소지자는 이 ‘이전 가능한 획득 기능’ 세트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그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교토대학이 연구대학으로서 125년이 넘는 긴 역사 속에서 가장 존중해 온 이념 중 하나는 파이어니어 정신입니다. 그렇다면 파이어니어란 무엇일까요? 진화생태학자인 쓰쿠바대학의 도쿠나가 유키히코(徳永幸彦)교수는 2004년 일본생태학회 대회에서 ‘pioneer는 한 명이면 충분한가? -강낭콩벌레의 유충에서 본 두 가지 전략’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발표를 했습니다. 강낭콩벌레라는 곤충은 유충일 때 강낭콩 속에 다수가 기생하며 성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낭콩의 껍질은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먼저 어느 한 마리의 애벌레가 열심히 껍질을 뚫고 침입하지 않고서는 기생할 수 없습니다. 일단 첫 번째 애벌레가 껍질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많은 애벌레들이 쉽게 침입하여 기생이 성립됩니다. 여기서 처음 구멍을 뚫는 유충을 파이어니어(Pioneer)라고 부르고, 그 이후에 들어오는 많은 유충을 팔로워(Follower)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뚫린 구멍을 통해 침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충은 팔로워가 되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마리는 먼저 구멍을 뚫는 파이어니어가 되어야 하는데, 모든 애벌레가 파이어니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또한 큰 구멍을 통해 팔로워들이 차례로 침입하면 결국 콩 속의 영양 자원이 급속히 감소해 후속 팔로워들이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산업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경우를 ‘파이어니어 전략’이라고 부르고 이렇게 새로 개척한 제품을 기반으로 개량된 신형을 개발하여 널리 시장으로 전개해 나가는 경우를 ‘팔로워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파이어니어의 전형으로 여러분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파이어니어 전략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지만, 신규 시장 개척에 따른 큰 이점이 있습니다. 반면 팔로워 전략은 개발 비용을 낮추고 상품 시장의 급속한 확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팔로워 전략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각자의 학술・문화, 과학・기술 분야에서 학위 연구를 시작하는 데 있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술・문화, 과학・기술의 복잡화와 고도화 속도를 고려할 때 그 연구 내용을 단순히 ‘파이어니어’와 ‘팔로워’로 구분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파이어니어적 방향성과 팔로워적 방향성은 시스템 전체로 봤을 때 각각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팔로워의 팔로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곤충의 예나 산업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팔로워의 팔로워’는 사회 전체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학술 연구에 종사하는 목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의 더 나은 삶과 건강에,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동선(Common Good)’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본교 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머릿속에 새겨두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종사하게 될 다양한 영역의 학술연구가 결국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자기만족적인 ‘팔로워의 팔로워’의 연구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일찍이 아이작 뉴턴은 1676년 런던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의 로버트 후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약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입니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과학의 새로운 발견, 위대한 아이디어와 영감은 선배들이 쌓아온 성과와 업적의 토대 위에서 탄생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의 ‘파이어니어’ 연구도 결국은 선배들의 업적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통적인 ‘팔로워’ 연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과 지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지키며 여러분들이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연구 생활 속에서 새로운 고지를 향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제 축하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