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21분 여러분, 입학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지 벌써 약 3년에 이르고, 여러분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이 감염병의 수차례 유행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여 오늘 떳떳이 입학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도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여러분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가족이나 선생님들의 든든한 지지와 격려의 힘도 매우 컸을 것이며, 이 점을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감염 확산도 드디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입학생마다 한 명에 한해서이지만 가까운 분을 모시고 3년 만에 직접 대면으로 입학식을 진행할 수 있게 됨을 교직원 일동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교토대학의 학생이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대학 입학을 큰 목표로 열심히 노력해오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 무대에 있어서의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앞으로 여러분은 한 분 한 분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스스로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스테이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면서 오늘 여러분께 ‘나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실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신의 본래 특성이나 적성을 인식한다는 것, 즉 ‘자기 발견'이 반드시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 대부분은 아직 여러분 안에 숨어 있고 여러분 자신에 의해서조차 아직 인식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인식하기보다는 종종 다양한 새로운 ‘만남’을 계기로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남’이란 새로운 사람일 수도 있고, 특정한 사건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책과의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에 의해 여러분은 지금까지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특징과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정신과 감성을 가능한 한 그동안의 고정관념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변화하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특히 추천하는 것은 가능한 한 젊은 시절에 해외 생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은 지난 3년간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학생들의 해외 유학 희망자 감소 경향이 두드러진다 합니다. 문부과학성의 조사에 따르면 그 주된 이유는 우선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고, 둘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관심 분야에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본교에서는 다양한 유학 지원 제도를 마련하여 여러분이 해외 유학에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요즘 학생들이 해외 유학에 대해 조금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해외 유학을 권하는 것은 꼭 새로운 정보나 다양한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 만은 아닙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외국인들과의 교류도 온라인 시스템으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 속에 실제로 몸담으며 일정 기간 생활한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접근의 수준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지속적인 체험으로서 여러분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한 권의 영어 연구서와의 만남을 계기로 20대 후반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고방식도 생활양식도 다른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과의 절차탁마의 연구 생활은 이후에 제 인생 궤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중 몇몇과는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책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제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그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글쓰기’의 효용성에 대해서입니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은 대부분 SNS 등 인터넷 공간을 통해 최대한 짧은 글과 간단한 이미지로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시되는 것은 속도입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라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심리를 바라보고 그것이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이 검증의 과정은 학문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정확한 지식과 충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search와 research의 차이를 알고 계실 겁니다. 영어 접두사 re에는 ‘반복’, ‘다시’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정보 수집만 필요하다면 컴퓨터 검색엔진에서 검색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연구(리서치)에는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반복적으로 검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방대한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와 심리도 그때그때의 외부 상황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히 이를 검증하면서 최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나다운 생각과 감성을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구(리서치)의 첫걸음이며,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자아실현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인공두뇌(AI)로 인해 일정한 주어진 과제에 대해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요령 있게 정리한 리포트까지 써준다는 ChatGPT 등의 생성 AI, 자동 문장 작성 소프트웨어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이미 학생들이 ChatGPT를 사용하여 과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어 앞으로의 대학 교육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AI에 의한 문장 작성에는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먼저 명백한 오보가 포함될 위험입니다. 이것은 무작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검색하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 특정 주장에 대해서 그 근거가 될 자료를 정확하게 인용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는 검색만으로 리서치라는 검증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학술보고서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며 주요 국제학술지들은 ChatGPT를 논문의 공저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AI를 통한 자동문장 작성은 앞서 말씀드린 스스로 ‘글을 쓴다’라는 것에 수반되는 중요한 검증 과정이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글을 쓴다'라는 것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학술과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일본 면역학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이자 문장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다다 도미오(多田富雄) 교수님과 유전학자 야나기사와 게이코(柳澤桂子) 박사님의 감동적인 왕복서한, ‘이슬 같은 몸이지만--왕복서한 생명으로의 대화’라는 책 속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과학자는) 자신이 감동하며 발견한 것을 같은 감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잘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 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정신력과 사고력을 단련시켜 줍니다. 같은 왕복 서한에서 다다 도미오 교수님은 이렇게도 쓰고 계십니다.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 씨가 처음으로 유전자 재구성 발견에 대해 콜드스프링하버 심포지엄에서 발표했을 때의 논문이 기억납니다. 명석함, 논리, 정확성, 견고한 구성. 과학 논문은 이래야 한다고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홈런을 친 타자처럼 행간에 감동이 넘쳐났습니다." 도네가와 스스무 씨라는 분은 본교 이학부 졸업생으로 당시 스위스 바젤의 연구소에서 항체 유전자 재구성이라는 획기적인 발견을 하여 1987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신 도네가와 교수님을 말합니다. 저는 도네가와 교수님의 글을 읽고 생명과학 연구의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젊은 연구자를 여럿 알고 있습니다.
지난달 3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선생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오에 겐자부로 선생님의 소설과 에세이를 즐겨 읽었습니다만, 완전히 새로운 독특한 문체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것이 문장이 가진 힘이며 데이터베이스 상에서 검색된 정보를 교묘하게 구성한 AI에 의한 문장과는 가장 큰 차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들여 차분히 자신의 문장을 완성하는 습관을 꼭 길러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미래에 여러분이 어떤 세계로 나아가든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손에 형태로서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교토대생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겁내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어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자기 발견을 하면서 더욱더 성장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는 ‘이슬의 몸이지만(露の身ながら)--왕복서한 생명으로의 대화’(다다 도미오, 야나기사와 게이코 지음, 슈에이샤, 2004년)에서 인용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