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신 석사과정 83명, 박사(후기)과정 138명, 전문직학위과정 5명 여러분, 입학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년간은 영상으로만 축하 인사를 전했지만, 3년 만에 대면으로 대학원 가을학기 입학식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을 교직원 일동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교토대학교에는 18개의 대학원 연구과와 더불어 30개가 넘는 부설연구소와 연구센터가 여러분의 대학원 과정에서의 학습과 연구의 장을 제공합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지금까지 학부에서 쌓아온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보다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함과 동시에 연구자나 고도의 전문직으로서 필요한 다양한 아트(방식)와 테크닉(기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박사 후기 과정에서는 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연구자로서의 방식에 따라 실천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나아가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과제에 도전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개별 학술 영역의 벽을 뛰어넘는 이른바 융복합 영역의 실천적 연구를 위한 세 개의 WISE Program (Doctoral Program for World-leading Innovative & Smart Education)도 개설되어 있습니다.
지금처럼 학술문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와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라는 것이 원래 개인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동기로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들의 앞으로의 연구 활동이 어떤 사회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좀 더 일반적으로는 ‘과학’과 ‘기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과학 연구는 자산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귀족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막대한 재산을 가진 데본셔 공작 가문 출신인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후 자신의 별장에 실험실과 작업실을 만들어 호기심에 따라 혼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생전에 왕립학회에 18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데 그쳤지만, 전자기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그의 사후에 남겨진 방대한 실험 노트에 대해 상세한 검증과 재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근대 물리학 및 화학의 많은 중요한 과학적 원리가 매우 정확한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편, 기술 측면에서도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 개량부터 독일의 니콜라우스 아우구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의 내연기관 원리 발명에 이르는 이른바 공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급속한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 사회와 경제의 양식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사회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다양한 기술혁신이 잇따라 생겨나고, 그것들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고 조합됨으로써 경제시스템과 사람들의 생활이 급격하게 변화하여 새로운 사회적 균형상태로 옮겨가는 것을 혁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술이라는 것이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명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1945년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이었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가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에게 보낸 <과학-그 끝없는 프런티어(Science-The Endless Frontier)>라는 보고서에서 연구에 전념하는 기초 과학과 제품개발에 응용하기 위한 과학을 구분하고, 대학의 기초연구에는 공적 자금이 투입돼야 하지만 기업의 응용연구는 공공자금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에 강하게 반영되어 대학의 과학연구에 대한 강력한 재정지원이 이루어졌고,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오로지 공적 과학 연구비 지원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일 뿐, 연구 내용이나 동기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근대 과학의 여명기에는 진리 탐구를 위한 연구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발명 사이에 간극이 있었고, 과학자와 기술자의 입장이나 의식도 확연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전한 현대에는 이러한 과학과 기술, 혹은 기초와 응용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흥미와 탐구심에 기반한 연구 성과가 거의 공백 없이 획기적인 사회적 응용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제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기초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창업’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특정 응용을 목적으로 한 개발연구에서 예기치 못한 과학적 발견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기술의 진화 없이는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반대로 기초연구의 혁신적 성과 없이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연구한다’는 것은 이제 개인적 활동의 틀을 넘어 훌륭한 사회적 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진행할 학술연구를 기초연구냐 응용연구냐 하는 고전적인 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필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학의 학술문화와 과학연구가 어떤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여의 형태는 학술・과학의 영역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기여도 있을 것이고, 미래로 이어지는 학문의 지식 축적에 대한 기여도 있을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2020)>에서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노동론, 즉 “노동 시장체제는 소득으로 노동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노동을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한 기여로 공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원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충만해지는 것은 공동선에 기여하고, 그 기여로 인해 동포인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때이다.” 여러분들이 어떤 학문과 과학 연구에 종사하든,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시민사회적인 관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창립 127주년을 맞이한 이 교토대학교의 다양한 학문 분야의 대학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학술 연구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개인의 호기심과 미지에 대한 탐구심이 학술 문화와 과학 연구의 원동력이라는 것 자체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20세기 이후의 과학 기술 발전을 보면 비약의 바탕에는 과감하게 개척해온 연구자의 프론티어 정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해 온 것은 종종 서로 다른 학문 영역의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창립 이래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것은 ‘자유의 학풍’이라는 정신입니다. 이는 학술 연구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다양한 사회적 관습이나 경험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정신의 자유를 의미하며, 프론티어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암묵지’로 이어져 온 본교의 전통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각자의 학술 영역에서 이 ‘자유의 학풍’ 아래 다양한 학술 영역의 다양한 세대,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며 알찬 연구생활을 하고, 새로운 학문연구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인사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