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신 석사 과정 2,271명, 전문직 학위 과정 338명, 박사(후기) 과정 872명 여러분, 입학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을 대표해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다양한 학술 영역에서의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 그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교토대학에는 18개의 대학원 연구과와 더불어 30개가 넘는 부설연구소와 연구센터가 여러분의 대학원 과정에 학습과 연구의 장을 제공합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지금까지 학부에서 쌓아온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보다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동시에 연구자로서 필요한 다양한 아트(방식)와 테크닉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박사 후기 과정에서는 학위논문 작성을 위해 연구자로서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 선행연구와의 비교 검토 등 실천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나아가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복합적인 과제로 도전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개별 학술 영역의 벽을 뛰어넘는 이른바 융복합 영역의 실천적 연구를 위한 세 개의 WISE Program (Doctoral Program for World-leading Innovative & Smart Education)도 개설되어 있습니다.
연구란 본래 개인의 호기심이나 미지에 대한 탐구심이 동기가 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학술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구사회와 인류의 삶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앞으로의 연구 활동이 어떠한 사회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라는 상반된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애초에 이러한 구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당시 미국의 과학정책을 이끌던 대통령 과학 고문인 Vannevar Bush가 Harry S. Truman 대통령에게 보낸 ‘과학-끝없는 프런티어'(Science-The Endless Frontier)라는 보고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과학을 연구(research)에 전념하는 기초과학과 제품개발(development)에 응용하기 위한 과학으로 구분하고, 대학은 기초연구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므로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응용연구에 종사하는 기업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어떠한 과학 연구에 공적 연구비가 지원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냉전시대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에도 강하게 반영되어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해 온 것은 대학, 특히 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기초연구에 대한 강력한 재정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 과학의 여명기에는 소위 기초연구와 그 응용연구 사이에는 종종 큰 격차가 있었고, 각각의 연구 입장과 방향성에는 상당히 뚜렷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진화생물학자 Jared Diamond 박사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였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Nikolaus August Otto의 내연기관 원리인 ‘오토 사이클'의 발명이 마침내 자동차에 응용되어 널리 보급된 것은 발명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890년대였습니다.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이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고, 과학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원리의 발견, 발명이 먼저 있고 이를 응용해 어떻게 유용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전개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입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양자컴퓨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30여 년 전인 동서냉전이 종식된 1989년 전미과학진흥협회(AAAS)가 발간한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과학(Science for All Americans)’이라는 보고서에서 기술은 과학에 의존하는 동시에 과학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거의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현격히 진화한 현대에서는 이러한 과학과 기술, 혹은 기초와 응용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순수한 흥미와 탐구심에 기반한 연구 성과가 자동적으로 획기적인 사회적 응용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응용을 목적으로 한 개발 연구에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생겨나는 일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현대에는 기술의 진화 없이는 과학의 돌파구를 기대할 수 없으며, 반대로 기초 연구의 돌파구 없이는 새로운 기술의 진보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과학과 기술은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를 견인하는 자동차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여러분이 진행할 연구를 기초연구냐 응용연구냐 하는 고전적인 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반드시 생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학에서의 학술·과학 연구가 어떤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여의 형태는 학술·과학의 영역에 따라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는 반면,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주제도 있습니다. 하버드대 Michael Sandel교수는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철학자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인정을 둘러싼 투쟁' 논리, 즉 노동시장은 인정을 구하는 투쟁이다. 노동시장은 필요성(소비)을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인정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소득을 통해 노동에 보상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노동을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한 기여로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만족감을 느낄 때는 공동선에 기여하고, 그 기여를 통해 동포인 시민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을 때이다.' 현대에는 학술과 연구도 노동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연구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어렵고 시급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변화와 극심한 자연재해, 개발에 따른 대규모 환경파괴, 신종 감염병과 팬데믹, 빈곤과 격차 심화 등은 인류 사회경제활동의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가시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과학철학자 Jerome Ravetz는 ‘과학으로 질문할 수는 있지만 아직 과학으로 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지적하며 지금까지의 인과율이 명확한 개별 과학, 즉 노멀 사이언스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을 포스트 노멀 사이언스 영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을 ‘안전과 건강과 환경, 그리고 윤리의 과학(The sciences of safety, health and environment, plus ethics)'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대 속에서 학술과 과학 연구 활동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다양한 학술 영역에서 첨단 연구의 길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개인의 연구의 원점은 어디까지나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을 동기로 삼는 것이기에 연구는 본래 즐거운 일입니다. 연구 과정 자체는 결코 쉽지 않고, 오히려 고민과 고통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의지와 지력을 다해 그때의 과제에 도전하고 이를 성취했을 때의 기쁨은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저 자신도 40년 이상 연구의 세계에 몸담으며 마음껏 연구를 즐겨왔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교토대학의 다양한 분야의 대학원에서 마음껏 연구 생활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연구 생활 속에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공동선(Common good)에 기여하고 동포인 시민들에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길을 모색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제 인사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