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졸업식 축사(2023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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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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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대학 여러 학부에서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오늘 떳떳이 졸업식을 맞은 2,808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및 재학생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하는 날까지 여러분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신 가족 및 친척 여러분도 정녕 기쁘시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3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23,071명이 되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 관점에서 행사를 자제해 오던 중에 코로나19도 차츰 소강상태에 이르러 3년 만에 졸업생 1명당 한 분으로 인원 제한을 두기는 했으나 가족 및 가까운 분들도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여러분 중 대다수는 2000년 이후, 즉 21세기에 태어난 분들입니다. 최근 런던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인 Lynda Gratton과 Andrew Scott의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 Living and Working in an Age of Longevity)”에 따르면 적어도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경우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 중 절반 이상은 100세 넘게 살게 될 것이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에 걸쳐 살아 오셨지만 여러분은 온전히 21세기라는 세기를 살게 됩니다. 그런 21세기도 첫 사반세기가 거의 다 지났는데, 21세기는 앞으로 대체 어떤 세기가 될까요? 유엔 경제사회국에 따르면 지구상의 인구는 이미 작년 말에 80억 명에 달했으며, 2080년대에는 약 104억 명으로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입니다. 그런 한편 우리 인류는 현재 지구의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커다란 지구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으며, 그 진행은 대규모 재해와 식량 및 에너지 문제를 포함해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걸쳐 21세기 전체에 이르는 글로벌 규모의 문제들을 야기시킬지도 모릅니다.

  100세 인생을 살아 간다는 것은 물론 여러분에게는 한참 후의 이야기여서 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러분의 앞으로의 라이프 스테이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라이프 스테이지는 크게 세 개의 단계, 즉 교육(Education), 직업활동(Career), 그리고 퇴직(Retirement)으로 나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 중 대다수는 이 인생의 첫 번째 단계를 막 마치려는 참입니다. 물론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대학원은 이미 아카데미아를 포함한 커리어 형성의 일부여서 다음 단계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서는 이 라이프 스테이지의 이행이 꽤 엄격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100세 인생 시대가 되면 양상이 상당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100세 인생”에서 Gratton 교수와 Scott 교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두 번째 단계, 즉 직업활동 시기는 단순히 연장된다기보다 멀티 스테이지화될 것이라 말합니다. 즉 일단 직업을 가진 후에도 다시 일정한 교육 시기로 돌아가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점차 일반적인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해외, 특히 미국은 이런 이른바 리커런트 교육(순환 교육)이 상당히 일반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듯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어떤 지식재산, 즉 특허와 관련된 국제 재판에서 증인으로 미국 법정에 출두해 증언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 미국 법률사무소의 지재 전문 변호사 분들과 미팅을 가질 기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 건은 생명과학 관련 사안이었는데, 변호사들이 생명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 매우 풍부하고 이해력이 높아서 대단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법률 전문가인데 어떻게 그렇게 생명과학 지식이 많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배운 후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박사후 연구원까지 거친 후에 로스쿨에 다시 들어가 법률 공부를 해서 과학 전문 변호사가 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크게 인생의 진로를 중간에 바꾼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드디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 우리처럼 인생의 커리어를 중간에 크게 바꾸는 일은 미국에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선택(choice)을 한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option)를 없앤다는 뜻이기도 하니, 적절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옵션은 많을수록 좋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진로(course)는 결코 외길이 아닙니다. 삶의 옵션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새로운 환경에 본인을 노출시키는 것, 즉 의식적으로 새로운 만남이나 가능성의 계기(chance)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계에 눈을 돌려 과감하게 해외로 나가 보는 것은 새로운 나의 발견과 개척의 중요한 기회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저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씨, 실업가 니토리 아키오(似鳥昭雄) 씨와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저를 포함해 세 명 모두 공통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명 모두 20대 젊은 시절에 해외로, 안도 다다오 씨는 유럽, 니토리 아키오 씨와 저는 미국으로 작정하고 뛰쳐나갔던 경험입니다. 각자 동기는 달랐지만 두 분이 공통되게 말씀하신 것은 그 때의 새로운 경험이 그 후 두 분 인생의 행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며, 그 부분은 저도 완전히 같았습니다.

 본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 자격의 의무인 임상 연수를 수료한 후 대학원에 진학할지 임상의로 전문적 연수에 들어갈지 고민하던 저는 우연히 미국 뉴욕의 대학 연구실로 연구 유학을 떠날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제3의 길은 대학원과 전문의 연수에 비해 상당히 불확실성이 높았던 터라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갈 결심을 했고, 20대 후반을 미국 대학 연구실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여러 경험, 특히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고 방식도 라이프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같은 세대 학생, 연구자들과 절차탁마했던 나날들과 우정은 그냥 단순히 연구라는 것에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에 그치지 않고 그 후의 제 사고 방식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안도 다다오 씨는 유럽 각지의 건물을 실제로 직접 손으로 만지며 걷는 몇 개월에 걸친 긴 여정에 나섰고, 니토리 아키오 씨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개념을 모색하며 LA에서 어려운 생활을 보냈는데, 두 분 모두 거기서 비슷하게 강한 인상을 받지 않았나 저는 추측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런 20대 시절의 여정은 모두 우연한 기회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 있어서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 선택한 옵션이었다는 의미에서 필연이었던 듯합니다.

 물론 옵션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해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나 책과의 만남, 또는 예기치 못한 사건 등도 여러분의 앞으로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Gratton 교수와 Scott 교수의 저서에서도 옵션을 더 오래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여러분의 앞으로의 긴 인생은 문자 그대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축하하며 마지막으로 매년 졸업생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는 Lucy Maud Montgomery 여사의 ‘빨간 머리 앤’에서 앤 셜리의 대사를 여러분께도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원문은 “I love bended roads. You never know what may be around the next bend in the roads.” 저는 이를 “나는 길모퉁이가 있는 길을 참 좋아한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대체 어떤 풍경일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라는 식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대하 소설 밑바탕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것은 인생과 자연에 대한 자유롭고 끝없는 호기심과 타자에 대한 무한한 감정 이입, 그리고 한없이 밝은 낙관주의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에는 많은 길모퉁이가 등장하겠지만 그 인생의 길이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가장 가까운 경로나 하물며 지름길을 선택해 걸을 필요는 없으며, 좀 돌아가거나 먼 길을 택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걷게 될 길에도 아마 ‘길모퉁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 언제나 예상치도 못한 멋진 만남과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힘차게 날아오르길 진심으로 기대하며 제 축사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