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학부 입학식 축사(2022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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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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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38명 여러분, 입학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축하 말씀 드립니다.

 재작년 이래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재난 사태를 맞아 일본에서도 많은 사회 활동이 제약되는 비정상적 사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고등학교 생활 대부분을 수업, 학습이나 클럽 활동 등도 제대로 못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 오셨을 줄로 압니다. 그런 가운데 여러분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면학에 힘써 떳떳이 오늘 입학식을 맞이하게 되신 터라 그 기쁨도 한층 더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물론 여러분 스스로의 노력도 작용했겠지만 주위의 가족들과 선생님들의 강력한 지원과 격려의 힘도 매우 컸을 것입니다. 모쪼록 그 사실도 마음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는 아직 종식에 이르지 않았지만 올해도 어떻게든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되어 이렇게 여러분을 직접 뵙고 말씀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저는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해 2022년은 교토대학에게도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메이지 30년) 6월 교토제국대학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따라서 올해로 창립 125주년을 맞게 됩니다.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는 꼭 19세기 청일전쟁과 20세기 러일전쟁 사이 시대에 해당합니다. 당시 일본에는 관립 대학이 도쿄에 하나밖에 없었고, 단순히 ‘제국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일본이 근대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관료와 기술자 등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서구의 학술과 문화 도입이 진전되면서 일본에서도 독자적으로 학술 연구와 고등 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1897년 이곳에 두 번째 제국대학으로 교토제국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 있던 제국대학은 도쿄제국대학으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이 배경에는 ‘정치의 중심에서 떨어진 교토 땅에 자유롭고 신선한, 그리고 정말로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학부 차원의 대학을 만든다’는 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교토대학은 이런 높은 이상 아래 만들어진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라는 사실을 부디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본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대해 종종 ‘자유로운 학풍’이라는 표현을 들으셨을 텐데, 이는 교토대학 설립의 중요한 이념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토대학 학생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대학 입학을 커다란 목표 삼아 노력해 오셨고 이는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프로세스였겠지만, 이제부터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향해 출발하게 됩니다. 이는 여러분의 ‘자기 발견’과 ‘자기 표현’을 위한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 발견’의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새로운 만남입니다. 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책이나 어떠한 사건일 수도 있는데, 새로운 만남을 통해 여러분은 그때까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했던, 예상치도 못한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젊은 정신과 감성을 오랜 습관과 선입견에서 해방시켜 두려움 없이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일찍이 대학생 시절에 저는 영어 공부를 하는 셈치고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던 면역학 책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때마침 우연히 운 좋은 만남을 가지는 능력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합니다. 뜻하지 않게 성공하는 재능, 세렌디피티를 단련하는 곳이 대학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면역학이 매우 일반적인 학문이지만 제가 대학생이었던 약 반 세기 전에는 의학부 정규 강의 과목에도 없었고, 의학생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문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읽어 나갈수록 저는 면역이라는 현상과 구조의 신비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대학 연구실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학회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이던 Barry Bloom 교수님이라는, 당시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면역학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고, 졸업 후에 뉴욕 연구실로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학부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떠나는 연구 유학은 당시에도 꽤 변칙적이었고, 당연히 외국 생활 경험도 없었던 터라 상당히 불안했지만 면역학 연구의 매력에는 이기지 못해 큰 마음을 먹고 유학을 떠났고 결국 3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 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뉴욕 연구실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우선 놀란 것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거기서는 언제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굳이 말하자면 내향적인 성격이었는데 이런 난상토론의 공간에서 매일 생활하다 보니 스스로의 성격도 꽤 바뀐 것 같습니다. 이윽고 저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공동 연구를 하게 될, 저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세포생물학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입버릇은 ‘Explore yourself’, 즉 ‘너 자신을 더 찾아내라’였습니다. 그녀는 후에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생물학 교수가 되는데, 우리 우정은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생 시절 한 권의 책과의 조우에서 비롯되었고, 그 후 몇 번의 커다란 만남에서 뒷걸음질쳤더라면 제 인생은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결국 우연으로 인한 성공의 기회는 그를 쟁취할 ‘준비된 마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에게는 되도록 이른 시기에 해외로 나아가 일정 기간 그곳에서 살아 보는 경험을 해 보시길 강하게 권해 드립니다. 전혀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커다란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자기 표현’, 특히 문장을 쓰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현대는 정보 사회라 불리며,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SNS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을 경유해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속도가 중시되고 많은 의사 전달이 가능한 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정보 전달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우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한편 천천히 시간을 들여 여러 번 거듭해서 문구나 표현을 수정하면서 탄탄한 문장으로 다듬어 나가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들여 문장을 만드는 과정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내 사고와 감정을 반복해서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 검증이라는 프로세스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는 정확한 지식과 충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얻게 되는 정보에는 종종 외적인 편향이 영향을 미칩니다. 이 편향은 ‘치우침’을 의미하며, 선입견이나 편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편향된 정보가 우리의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공들여 문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내 사고와 감정을 가능한 한 이러한 인지 편향에서 해방시켜 바람직한 본래 자기 모습을 확인하고 만들어 나가는 프로세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탄탄한 문장 쓰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내 사고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다양한 영역에서 학술 조사와 과학 연구의 세계로 들어서게 될 텐데, 그곳에서는 문장 쓰기가 필수 요소입니다. 문장의 달인이라 불렸던 면역학자이자 신작 노(能) 작가 다다 도미오(多田富雄) 교수님이 유전학자인 야나기사와 게이코(柳澤桂子) 박사님과 주고 받은 서한을 수록한 ’이슬 같은 몸이지만’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왜 많은 과학자들이 문장을 잘 못 쓰냐 하면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는 노력에 인색하기 때문일 겁니다. ...(과학자는) 자신이 감동하며 발견한 것을 같은 감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잘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문장을 쓴다는 것은 문과, 이과와는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논리, 명석한 관찰 능력, 그리고 발견의 감동을 표현하려는 노력입니다. 그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최근 늘어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정말 맞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탄탄한 문장을 쓴다는 것은 매우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지만, 이는 여러분의 정신력과 사고력을 단련시켜 줍니다.

 다다 도미오 교수님은 이런 예도 드셨습니다.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 씨가 처음으로 유전자 재구성 발견에 대해 콜드스프링하버 심포지엄에서 발표했을 때의 논문이 기억납니다. 명석함, 논리, 정확성, 견고한 구성. 과학 논문은 이래야 한다고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홈런을 친 타자처럼 행간에 감동이 넘쳐났습니다.” 이 도네가와 스스무 씨라는 분은 본교 이학부 졸업생으로 면역학 분야에서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응하기 위해 유전자가 변화해 다양한 항체를 만든다는 획기적인 발견을 통해1987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도네가와 교수님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공들여 문장을 쓰는 습관을 모쪼록 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미래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 형태로 남는 것이 생깁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교토대생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겁내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어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그 속에서 예상치도 못한 자기 발견을 하시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는 ‘이슬 같은 몸이지만(露の身ながら)”(다다 도미오, 야나기사와 게이코 저, 슈에이샤, 2004년)에서 인용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