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작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대로 인해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의 입학식을 거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1년, 늦게나마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직접 뵙고 어떻게든 입학식을 치를 수 있게 된 것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과 함께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 교토대학 입학과 대학원 진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한 종식에 이르지 않아 아직 여러분의 가족 분들까지 이 자리에 모실 수는 없지만 드디어 직접 여러분께 말씀 전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작년 이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의 사회 활동이 크게 제약되는 비정상적 사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입학한 이래 캠퍼스에 자유롭게 드나들지도 못한 채 거의 모든 수업도 온라인이라는 형식으로 받아야만 하는 상황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특히 학부 신입생 여러분은 기대했던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클럽, 동아리 등 동호회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어 무척 불안하고 마음 편치 않은 나날들을 보내셨을 줄 압니다. 또 여러분을 지원하고 격려해 오신 가족 분들 걱정도 얼마나 크셨을까 싶습니다.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 그래도 기력을 유지하며 오늘까지 버텨 오신 데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고에 따르면 3월 시점에 이미 전 세계에서 약 1억 3000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으며, 그 희생자는 27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번과 같이 인류가 처음으로 접하는 병원체에 의한 감염증은 신종 감염병이라 불립니다. 비교적 최근 사례만 봐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볼라바이러스병,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인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신종 감염병을 겪어 왔습니다. 대체 이러한 병원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생동물입니다. 여러 야생동물 속에서 공존하던 병원체가 어떠한 계기로 사람에게 감염되고, 그러다 사람 간에 감염되도록 적응 변화된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은 인류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여겨지는 많은 감염증, 예를 들면 홍역, 결핵, 천연두, 인플루엔자, 백일해 등도 과거 수천 년에서 1만 년 정도 전 기간 동안 소, 돼지, 새 등 동물로부터 사람이 감염된 후, 이윽고 사람 간 감염이 일어나게 된 것이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는 구대륙에서 인류가 인구 밀도가 높은 농경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소나 돼지 등 야생동물을 가축화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의 Jared Diamond 교수는 유명한 저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이런 인류의 감염증은 가축화된 동물들에게 받은 ‘사악한 선물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구대륙 인류는 이들 병원체에 대해 일정한 저항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현재에도 아직 천연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병원체는 완전히 박멸되지 않았습니다.
구대륙 인류는 1만 년 이상 전부터 신대륙으로도 이동해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대항해 시대에 군마와 철제 총을 가진 적은 수의 유럽인이 침략하면서 신대륙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16세기에 멸망에 이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Jared Diamond에 따르면 실제로는 제국 멸망보다 훨씬 이전에 신대륙 원주민 인구는 이미 크게 감소하고 있었으며, 그 주된 이유는 구대륙인이 가져온 감염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멕시코 지방에 2천만 명이나 있었던 신대륙인 인구는 구대륙인이 가져온 천연두가 대유행하면서 160만 명까지 격감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신대륙 원주민은 아직 밀집된 농경 정착생활을 하지 않았고 가축도 키우지 않던 터라 처음으로 조우한 동물로부터 유래된 감염증에는 전혀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병원체가 지구 규모로 인류사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박쥐 등 야생동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천연두 등과의 커다란 차이점은 오늘날 세계가 글로벌화됨에 따라 몇 백 년 단위가 아니라 몇 개월 단위로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퍼졌다는 부분일 겁니다. 지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 양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아득한 수 만 년 기간에 걸친 현생 인류와 감염증의 기나긴 싸움과 공존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 창립되어 120년 이상 되는 긴 역사를 지닌 대학인데, 입학식이 중지되는 경험을 하신 것은 실은 여러분이 처음은 아닙니다. 2차대전 전 제국대학 시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2차대전 후 신(新)제 대학이 된 후 한 번, 입학식이 실질적으로 중지된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반 세기 전인 196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는 전 세계에서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가 역사의 전면에 나섰던 격동의 시대로, 파리와 베를린 등 유럽 각지에서도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일본에서도 많은 대학에서 이른바 학생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교토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1969년에는 대학 전체가 바리케이드로 봉쇄되었고 그 해 입학식은 일부 학생이 난입하면서 겨우 10초 만에 폐회되었습니다. 실은 제가 교토대학에 입학했던 것이 바로 그 해여서, 여러분과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입학 후에도 1년 내내 학교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당시는 지금 같이 온라인 시스템 같은 것도 당연히 없던 터라 아예 수업 자체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교토로 와서 처음으로 혼자서 하숙 생활을 했던 터라 지난 1년 동안 여러분이 느꼈을 불안감과 초조함 등을 잘 이해합니다. 결국 저는 아직까지 입학식을 체험하지 못했지만, 오늘 반 세기 만에 똑 같은 경험을 하신 여러분과 말씀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감개무량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제가 여러분께 두 가지 사항을 권장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책을 깊이 있게 정독하는 것입니다. 최근은 정보화 시대라 불리며 인터넷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정보를 입수하기에는 매우 편리합니다. 오늘날은 PC나 태블릿으로 문자 정보를 접하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서란 단순히 정보에 접근하기만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라는 젊은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가 있는데 그는 ‘책을 읽는 모습은 멋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과 그 책을 쓴 사람 사이에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나 읽는 사람의 모습에서 그런 기운이 스며 나온다는 뜻일 겁니다. 이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는 아파트에서 혼자 우울하게 지내던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Dostoevsky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자기 인생의 대략적인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의 소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울했던 나는 살아있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작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실은 저도 대학 3학년 무렵에 Frank Macfarlane Burnet 경이 쓴 ‘Cellular Immunology’, 세포성 면역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났습니다. Burnet 경은 현대 면역학 이론을 확립한 선구적 면역학자로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영어 공부하는 셈치고 한 자 한 자 읽었습니다. 모두 13장(章)으로 이루어진 대작으로, 암과 면역에 대해 고찰한 맨 마지막 장만 왜인지 매우 짧았는데 ‘나는 암 면역이라는 것을 믿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제13장의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졸업 후 곧 유학 기회를 얻어 미국 연구실에서 암과 면역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20대 후반 만 3년에 걸친 미국 생활 경험이 이후 인생의 행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합니다. 학생 시절 Burnet 경 저서와의 만남과, 그에 촉발되어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무척 다른 형태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하나 더 권해 드리고자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젊을 때 외국에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저와 아주 친하게 지내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씨도 자주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건축과는 인연도 연고도 없던 학창 시절을 보낸 안도 씨가 완전히 독학으로 건축가의 길을 꿈꿨던 20대 초반에 했던 일은 3개월 동안 문자 그대로 땅을 훑듯 온 유럽을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돈 없는 여행자 생활 동안 매일 각 도시의 온갖 유적과 건축군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세상을 감탄시킬 독창적인 안도 건축 세계의 구축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당시 안도 씨의 독서량도 엄청났던 것 같아서 건축사가인 미야케 리이치(三宅理一) 씨가 집필한 ‘안도 다다오-건축을 살다’라는 평전에는 ‘소년 시절 공부를 싫어하던 기질이 어디서 바뀌었는지, 20대의 안도는 공부벌레 그 자체였다 말해도 좋다’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해외 여행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중요한 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라도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실제로 생활해 보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롭고 강인한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길을 열어 가신 후에는 틀림 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간 길이 만들어지게 될 겁니다. 이를 위해 교토대학은 가능한 한 지원해 드리고자 합니다. 1년 동안 여러분은 힘든 경험을 하셨는데, 이 경험을 미래를 위한 거름 삼아 앞으로의 대학 생활과 연구 생활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