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42명 여러분, 입학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 裕夫) 전 총장님, 마쓰모토 히로시(松本 紘) 전 총장님,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작년 이래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사태를 맞았으며 일본에서도 많은 사회 활동이 제약되는 비정상적 사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면학에 힘써 오늘 떳떳이 입학식을 맞이하게 되신 터라 그 기쁨도 한층 더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물론 여러분 스스로의 노력도 작용했겠지만 여러분 주위의 가족들과 선생님들의 강력한 지원과 격려의 힘도 컸을 것입니다. 모쪼록 그 사실도 마음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작년은 코로나 19가 한창일 때라 유감스럽게도 입학식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올해는 어떻게든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되어 여러분을 직접 뵙고 말씀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토대학 학생입니다. 본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은 주위 분들, 고등학교 선생님과 선배들, 또는 홈페이지 등의 정보를 통해 교토대학에 대해 다양한 이미지를 품어 오셨을 겁니다. 120년 이상 역사를 지닌 전통 있는 대학,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과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연구력을 자랑하는 대학, 탐험과 모험, 필드 활동이 활발한 ‘오모로이 대학’(오모로이: '재미있는'이라는 의미의 간사이 지방 표현), 반골 정신이 강하고 야생적인 대학, 여러 이미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자주 들으신 표현은 ‘자유로운 학풍’ 아닐까 합니다. 확실히 자유로운 학풍은 여러 가지 교토대학 이미지의 근간에 있는 전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대체 뭘까요.
16세기 프랑스에 Étienne de La Boétie라는 조숙한 사상가가 있었습니다. 친한 벗 Montaigne에 따르면 Boétie가 고전 명저인 ‘자발적 복종’을 쓴 것은 16세에서 18세, 지금 여러분과 거의 같은 연배 무렵이라고 합니다. 그 책에서 자유에 대해 고찰하며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자유란 생물의 자연적 본성이며, 야생마는 길들이려 하면 재갈을 물어뜯으며 반항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갈을 강제로 계속 채워 놓으면 나중에는 스스로 재갈을 차고 이를 즐기게 된다’고 말입니다. 즉 자유는 사람의 자연적 본성이지만 종종 주위 환경과 관습에 따라 사람은 쉽게 이를 포기해 버린다는 겁니다. 저는 자유란 본래의 자신을 주위 환경과 관습 등 여러 외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발견하는 것이라 해석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대학 입학을 커다란 목표 삼아 노력해 오셨고, 이는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프로세스였을 겁니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기회 삼아 여러분의 자유로운 정신을,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던 상식과 관례로부터 한 번 해방시켜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스스로도 몰랐던, 뜻밖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데 오늘 제가 여러분께 두 가지 사항을 권장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책을 깊이 있게 정독하는 것입니다. 최근은 정보화 시대라 불리며 인터넷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정보를 입수하기에는 매우 편리합니다. 오늘날은 PC나 태블릿으로 문자 정보를 접하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서란 단순히 정보에 접근하기만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라는 젊은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가 ‘책을 읽는 모습은 멋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과 그 책을 쓴 사람 사이에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나 읽는 사람의 모습에서 그런 기운이 스며 나온다는 뜻일 거라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감정이입, 즉 공감하는 모습이라 말해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소설이나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과학 논문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만간 여러분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이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는 아파트에서 혼자 우울하게 지내던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Dostoevsky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책을 읽었다는데, 아마도 그 때 내 인생의 대략적인 방향이 정해져 버린 것 같다고 썼습니다. 실은 저도 대학 3학년 무렵에 Frank Macfarlane Burnet 경이 쓴 ‘Cellular Immunology’, 번역하면 세포성 면역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났습니다. Burnet 경은 현대 면역학 이론을 확립한 선구적 면역학자로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영어 공부하는 셈치고 한 자 한 자 읽어 나갔습니다. 이 책은 모두 13장(章)으로 이루어진 대작으로 상당히 시간이 걸렸는데, 드디어 맨 마지막 장, 즉 제13장에 이르렀을 때 그 장만 이상하게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장은 암과 면역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자신은 암 면역이라는 것을 믿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아는 바가 거의 없어서 쓸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이 그 장의 결론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제13장의 문장이 계속 머리를 맴돌게 되었고, 결국 ‘암과 면역’이 제 필생의 연구 주제가 되었습니다.
하나 더 권해 드리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젊을 때 외국에 나가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글로벌 사회가 되어 여러분 중에는 해외 여행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비록 짧은 기간이라도 외국에서 실제로 생활해 보는 것은 기존 상식이나 관례에서 해방된 자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커다란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자신도 앞서 말씀 드린 Burnet 경 저서와의 만남 후에 기회가 닿아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연구실에서 암과 면역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20대 후반 만 3년 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거의 같은 세대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생들과 절차탁마하는 연구 생활을 보냈습니다. 이 경험이 이후 제 인생의 행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합니다. 비슷한 관심과 뜻을 품은 서로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얼마나 나와 비슷하며, 또 얼마나 나와 다른지 나날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료들과는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계속 교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Burnet 경 저서를 만나고, 그에 촉발되어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간 두 가지 사건이 없었더라면 제 인생은 무척 다른 형태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새로운 대학 생활 속에서 인생에 있어 커다란 만남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교토대학은 지금까지 1949년 일본 최초였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교수님의 노벨 물리학상을 비롯해 총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대학 중 가장 많은 수입니다. 물론 노벨상은 결코 연구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는 학문 영역을 불문하고 이런 선배들이 시대의 유행과 관습에 얽매이는 일 없이 순수하게 자유로운 발상에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오신 결과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유로운 학풍 아래 새로운 학문의 세상이 개척되고, 그 결과 사람들의 생활과 복지, 건강에도 공헌하는 결과가 창출된 겁니다. 이것이 교토대학 학문의 전통입니다. 최근에는 2018년에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수님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셨고, 저도 공동연구자로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혼조 교수님은 ‘교토대학에서 우리는 언제나 No.1보다는 Only One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진정 이상적인 것은 Only One으로 내가 발굴해낸 작은 샘의 물이 이윽고 작은 시내에서 큰 강으로 불어나 결국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이 교토대학의 일원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도 기존 사고의 습관과 사회의 유행 같은 것에서 일단 벗어나서 정말 내 마음을 움직이는 샘을 내 손으로 찾아내 주시길 바랍니다. 금세는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자유로운 상태이며, 그것이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학풍’일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시인의 ‘도정(道程)’이라는 약 100년 전, 1914년에 쓰여진 시는 ‘내 앞에 길은 없다. 내 뒤에 길은 생겨난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신 후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은 길이 반드시 생겨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교토대학은 가능한 한 지원해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