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한 석사 과정 63명, 박사(후기) 과정 105명, 전문직 학위 과정 6명 여러분, 입학 축하드립니다.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이제 여러분은 학문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각 학문 분야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교토대학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 학부와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으며 10개 학부, 18개 연구과, 13개 부설연구소, 17개 교육연구시설이 여러분의 배움을 지원합니다. 석사 과정에서는 강의를 듣고 실습과 필드워크를 통해 학부에서 배양한 기초 지식/전문 지식에 더해 더욱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갈고 닦는 것이 요구됩니다. 박사 후기 과정에서는 논문을 쓰는 것이 중심이 되어 이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선행 연구와의 비교 검토가 반드시 필요해집니다. 또 현대 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적인 지식과 기술 습득을 추구하는 5개 박사 과정 교육 리딩 프로그램과 2개 WISE Program(Doctoral Program for World-leading Innovative & Smart Education, 문부과학성 선정)을 운영 중입니다.
금년도 대학원 후기 입학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팬데믹의 영향, 특히 해외 신입생이 일본에 입국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온라인으로도 중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입학생 여러분께는 직접 뵙고 축하 말씀 드리지 못하게 되어 대단히 유감이나, 오늘은 web 동영상을 통해 축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교토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 박사(후기) 과정 및 전문직 학위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 생활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우선 본교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 드리고자 합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 일본에서 두 번째 제국대학으로 창립되었습니다. 19세기 이전 유럽의 대학은 오로지 성직자, 법률가, 의사 등 전문직을 양성하는 기관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창설된 제국대학의 목적도 근대화 정책 속에서 각 분야의 실무적 전문가를 교육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제2차 산업혁명’의 결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과학과 기술의 역할이 급속히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 아카데미가 맡아 왔던 연구를 대학 기능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신흥 독일에서는 베를린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이 하나라는 생각 아래 연구를 통해 교육한다는 스타일, 이른바 Humboldt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국가로부터의 ‘학문의 자유’를 내걸고 연구자와 학생이 자율적 연구에 기반해 진리와 지식 획득을 목표로 하는 대학 이념입니다.
이러한 대학 구조 전환 속에서 두 번째 제국대학으로 창립된 교토대학은 이 독일형 연구대학 모델을 조기에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비슷한 무렵 미국에서는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으로 존스홉킨스대학이나 시카고대학이 설립된 차였습니다. 그런 이래 오늘날까지 교토대학에서는 ‘자유로운 학풍’ 아래 ‘연구를 통해 교육’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삼아 왔습니다. 본교는 일본 최초의 연구형 대학으로 출발했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연구란 개인의 호기심과 미지에 대한 탐구심이 동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학이나 그 응용인 기술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짐에 따라, 또 과학과 기술이 일체화된 과학기술로 인식됨에 따라 그 사회에서의 역할은 급격히 증대되고 다양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자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라는 말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최근에는 공적 연구 지원도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어떤 비율로 이루어져야 하느냐는 맥락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사실 이 구분은 1945년 당시, 미국 과학 정책을 지도하던 대통령 과학 고문 Vannevar Bush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Science-The Endless Frontier)라는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그는 과학을 연구(Research)에 전념하는 기초적인 과학과 제품 개발(Development)에 응용하기 위한 과학으로 구별하고, 대학은 기초 연구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어서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나, 응용 연구에 임하는 기업에는 공적 자금은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기술합니다.
최근 일본의 산학 연계 논의에 비추어 보면 조금 의외로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은 실제로 냉전 시대 미국 과학기술 정책에도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전후 미국이 양과 질 양면에서 세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견인해 온 기반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기초와 응용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오늘날에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순수한 탐구심에 기반한 기초 연구 성과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획기적인 응용 연구로 확장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면역 연구의 프런티어에서 그런 경험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런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또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좁은 영역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고 다각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시길 기대합니다.
과학 또는 과학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는 문자 그대로 지구 규모의 어렵고 긴급도 높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 변화나 환경 파괴, 대규모 자연 재해와 원자로 처리, 세계적인 감염증 확대 등은 인류 사회경제 활동의 급속한 글로벌화에 의해 표면화되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로 지금 온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코로나 19 팬데믹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작년 말 중국의 한 도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이미 세계적으로 300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사망자도 100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습니다. 발생 초기부터 전 세계 연구자들이 진단법, 치료법, 백신 개발, 임상 연구를 포함해 다양한 전문성에 기반해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이 감염증에 대한 많은 과학적 사실이 비교적 단시간에 급속하게 축적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가 이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틀림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성과가 곧바로 팬데믹 대책 결정에 신속히 통일된 지침을 알려줄 수 있느냐 하면 그리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 감염증은 전 세계 사람들을 거의 동등하게 공격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법은 지역의 역사, 문화, 종교, 경제 체제와 생활 양식 등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과학 데이터에 기반한 방역 대책 모델이라 해도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지 여부는 사회 시스템과 사람들의 의식에 의해서도 규정됩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지식이 활용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과학의 성과가 앞으로 더 크게 진전하더라도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1990년대에 옥스포드대학 과학철학자 Jerome Ravetz는 ‘과학으로 물을 수는 있으나 아직 과학으로 대답할 수는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지적하며 이를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이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과학을 지칭하는 것이며,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이 영역에서는 과학이나 기술은 인간 생활과 사회 활동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한편 탈정상과학 영역이란 현상이 지극히 복잡하며 불확실성이 높고, 동시에 의사결정에 매우 많은 이해(Stakes)가 관여하는 영역입니다. 이 불확실성은 빅데이터와 초고속 연산을 기초로 하는 AI에 의해 반드시 해결되지만은 않는다고 Ravetz는 말합니다. 바로 그래서 그는 탈정상과학을 ‘안전과 건강과 환경과 윤리의 과학’(The sciences of safety, health and environment, plus ethics)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번 팬데믹은 바로 이 탈정상과학 영역에 있으며, 지극히 복잡하고 중요한 사회적 과제에 대한 대처와 의사결정에, 인문과학과 사회과학까지 포함해 과학이 전체적으로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또 어떤 형태로 관여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딱딱해져 버렸는데, 처음에 말씀드렸듯 연구란 어디까지나 개인의 호기심과 미지에 대한 탐구심이 동기로 작용하게 되며, 따라서 원래 즐거운 것입니다. 저 스스로도 40년 이상 연구의 세계에서 지내며 실컷 연구를 즐겨 왔습니다. 그런 한편 여러분은 과학이 어디까지,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 중요한 사회적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이제부터 연구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여러분이 앞으로 이 교토대학에서 마음껏 연구생활 나날을 즐기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제 축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