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777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0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14,388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입학한 이래 어떤 학생 생활을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디 지금까지 몇 년간 교토대학에서 지낸 나날들을 떠올려봐 주십시오.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고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앞으로 일본은 Society 5.0(인간 중심의 초스마트 사회)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ICT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가운데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됩니다(IoT). 대량의 정보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삶의 효율을 더욱 끌어올립니다. 이전처럼 천연 자원이나 제조물이 아니라 정보 자원, 즉 지식을 공유하고 집약시켜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집약형 사회’가 도래하게 됩니다. 경제도 사람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분산과 순환이 사회와 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런 미래 사회에서는 다양성과 창의성 외에도 글로벌한 윤리관에 기반한 자기결정력이나 조율능력 등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물리적인 공간과 가상 공간의 융합이 현저해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인간의 사고가 기계 연산과 융합되고 생물 차원의 기반을 초월해 인간과 기계, 현실 세계와 가상 현실 간에 경계가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이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에 나왔습니다. ‘로봇’이라는 단어는1920년 출판된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Karel Capek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체코어로 ‘부역’을 의미하는 robota에서 유래된 조어입니다. 이 희곡은 RUR사의 로봇 공장 사장실에서 시작됩니다. 사장실 벽에 붙어 있는 몇 장의 포스터에는 ‘가장 저렴한 노동력, 로숨의 로봇’, ‘신제품 열대지방용 로봇, 한 개에 150달러’, ‘당신만의 로봇을 장만하세요!’ 등등의 선전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는 겉모습이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장인 Harry Domin은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꿈을 품고 로봇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려 모든 것의 가격을 낮추면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로봇은 노동 효율성을 인간 이상으로 향상시켰고,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게 됩니다. 이윽고 로봇들은 ‘로봇처럼 유능하지 않은 인간은 기생충 같아 보인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회사 간부들은 인간 생활에서 노동이라는 것을 없앤 결과 ‘저주받은 낙원’을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일 때문에 나이를 먹지도, 아이 때문에 나이를 먹지도, 가난 때문에 나이를 먹지도 않은 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처럼 져버릴 운명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비생산성이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가능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이 걱정과 노동이 있는 생활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이미 로봇은 인간을 지배하고자 반란을 일으킨 상태입니다. 저자인 Capek은 ‘인간이고 싶다면 지배해야 하며, 인간을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처럼 만들어진 로봇들은 바로 그런 인간스러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스스로를 만드는 법을 모르는 로봇도 곧이어 멸종할 운명에 처합니다. Capek은 마지막으로 단 한 사람 남은 인간, 건축사인 Alquist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만들고 세웠던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런데도 생명은 사라지지 않아. 그냥 우리만 사라진 거야.’ 놀랍게도 이 내용은 현대에도 딱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얼마 전 내각부가 공모한 문샷형 연구개발 제도-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인류 최초 달 유인 우주비행을 실현시킨 아폴로 계획을 본떠 지은 이름입니다–를 보면 6개 목표 중 2개가 로봇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2050년까지, 즉 30년 후 달성을 기대하는 목표인데, 하나는 여러 사람이 원격으로 조작하는 많은 아바타와 로봇의 조합을 통해 복잡한 대규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술개발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과 동등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인생을 동반하며 함께 성장하는 AI 로봇 개발입니다. 인류의 꿈은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과학자들은 그 꿈을 이뤄줄 기술을 개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100년 전에는 공상과학이었던 꿈이 지금은 실현 가능한 목표로 계획되려 하고 있다는 부분 아닐까요?
게다가 AI 개발에 의해 이미 많은 일이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노동 중심 사회와는 다른 가치관이 싹트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1995년에 만들어진 ‘과학기술기본법’에도 이번 개정 작업 때 인문/사회과학의 중요성과 혁신의 창출이라는 문구를 함께 넣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인간성이란, 인간이 원하는 행복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강하게 의식하며 기술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유명을 달리하신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교수님은 꽤 오래 전부터 철학의 부흥, 일본발 철학 창출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1968년에 펴낸 ‘철학하는 마음’에서 교수님은 ‘철학은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과거의 철학 학설이나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학문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인간의 생활을 다스려 온 기성 사상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유럽 철학은 ‘이성을 지닌 동물’이라 답합니다. 하지만 이성 사상에 기반한 유럽 문명은 힘의 문명, 지배의 문명으로 지구상에서 많은 살육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 문명을 수용해 전쟁의 길로 내달렸던 근대 일본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금 전에 나왔던 Capek의 ‘인간이고 싶다면 지배해야 하며, 인간을 죽여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메하라 교수님은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에 의해 ‘영혼 불멸’ 사상이 보급되었으며, 불멸이 인간의 전제가 되어 버린 지금, 다시금 죽음의 철학을 재부흥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과 이어져 있는 존재이며, 이 연결의 자각을 회복시킴과 동시에, 의사(意思)가 아니라 감정을 새로운 원리로 삼아 인간의 존재를 재인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평화의 철학이며, 인류 제일의 의무를 평화로 삼고 그곳에서부터 인간을 다시금 새로이 파악하는 철학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유럽 철학자들은 인식이나 존재, 가치와 욕망에 대해 깊은 사변을 거듭했지만, 평화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철학은 동양이 가진 심도 있는 생의 지혜를 유럽 철학이 가르치는 명석한 논리와 대화시키면서 현대 위기에 대한 답을 내 안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토대학이 그 필요성에 강하게 공감하는 것은 2차대전 전부터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나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 등이 독자적인 철학을 내놓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3년 전에 문부과학성으로부터 지정 국립대학법인으로 지정받아 일본 학술계의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견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문/사회과학의 미래형 전파’라는 중점 과제를 담당할 유닛을 학제융합 교육연구 추진센터에 설치했습니다. 목표는 글로벌화와 다극화가 심화되는 세계 정세를 고려하면서 서양 일극 집중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 환경, 자연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포괄적 차원의 인문지식, 사회지식의 재구축입니다. 이미 학제적인 연구회와 심포지엄을 유럽과 아시아에서 여럿 주최했으며, 그 토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움직임을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도 이해하셔서 모쪼록 분야와 직종을 초월한 논의에 참여하시고, 인간과 사회에 관한 사고를 심화시켜 나가셨으면 하는 점입니다.
앞으로의 사회에는 기존에는 없었던 인간관과 자연관이 필요하게 됩니다. 첨단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지금까지 시대에 뒤떨어졌다 여겨져 왔던 생각을 갈무리해 미래를 다시금 직시하는 것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온고지신,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아는 정신이 더욱 더 필요해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에는 정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기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영상이 정보기기를 통해 무료로 유포되며 이제 서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선도하는 혁신에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회과학적인 지식과 함께 확고한 인간관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종합적인 학술연구의 축적을 통해 재검토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토학파’라 불렸던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심도 싶은 사고의 수맥을 개방할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의 문제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뒷받침하던 자본주의의 발전 법칙, 또는 '경제 성장은 최고의 선'이라는 이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었던 1970년대 초반은 아직 일본이 고도성장 시대여서 바로 눈 앞에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열렸으며 과학기술을 통해 잇달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려는 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공해 문제와 온난화 등 환경 악화가 지구 규모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후에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지구의 열화를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며, 인간 사회도 물질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 이념이 된 것입니다. 일본 산업계도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창된 SDGs(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기반해 기업 윤리와 전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사회에는 지구 규모로 생물 다양성과 인간 사회를 포용적으로 파악하는 사고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교토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중에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직접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이 난제에 직면하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스스로의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0년 3월 24일
교토대학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