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한 석사 과정 2,297명, 전문직 학위 과정 306명, 박사(후기) 과정 825명 여러분, 입학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명예교수님, 참석해 주신 부학장, 연구과장, 학사장, 교육부장, 연구소장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이제 여러분은 학문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각 학문 분야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교토대학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으며 총 24종의 학위가 수여됩니다. 18개 연구과, 14개 부설연구소, 17개 교육연구시설이 여러분의 배움을 지원합니다. 석사 과정에서는 강의를 듣고 실습과 필드워크를 통해 학부에서 배양한 기초 지식/전문 지식에 더해 더욱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갈고 닦는 것이 요구됩니다. 전문직 학위 과정에서는 강의 외에 실무 실습, 사례 연구, 현지 조사 등을 포함해 각 분야에서 실무 경험이 있는 전문가로부터 배울 기회가 많아집니다. 박사 후기과정에서는 논문을 쓰는 것이 중심이 되어 이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선행 연구와의 비교 검토가 반드시 필요해집니다. 또 현대 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적인 지식과 기술 습득을 추구하는 5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그러면 연구란, 연구의 기쁨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교토대학 이학부에서 배우고 세계를 경악시킨 논문을 여러 개 쓴 오카 기요시(岡潔)라는 수학자가 있습니다. '슌쇼주와(春宵十話)'라는 에세이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수학을 해서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는 봄철 들밭에 피는 제비꽃은 그냥 제비꽃답게 피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꽃 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제비꽃이 알 바 아닌 것이다. 피어 있는 것과 피어 있지 않은 것이 그냥 자연스레 다를 뿐이다. 나로 말하자면 단지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살 뿐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다름 아닌 바로 '발견의 기쁨'이다.
수학적 발견 전에는 긴장과 그에 이어지는 일종의 느슨함이 필요하다고 오카는 말합니다. 그리고 의식 하층부에 숨어 있던 것이 서서히 성숙해 표층에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하며 이것이 표층에 드러났을 때는 이미 자연스레 문제는 해결된 상태입니다. 수학적인 발견에는 반드시 날카로운 기쁨이 따르게 마련이며 그 기쁨이란 '나비를 채집하러 나갔는데 아주 멋진 놈이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라 말합니다. 또 오카는 학문에서 정서가 중요하다고 설파하며 자연의 감명과 발견이 잘 결부된다고도 말합니다.
오카는 연구자로서는 이색적인 생애를 살았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거쳐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후 30대 후반에 교편을 놓고 농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밭일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해 연이어 커다란 수학적 발견을 이루어 냅니다. 오카가 구축한 다변수 복소함수론은 논리가 아닌 정서적 기능에 의해 태어났다고들 합니다. 오카는 수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농민이라 말하며 둘 다 씨앗을 뿌려 키우는 것이 일이고 그 독창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학자는 씨앗을 고르고 나면 그 다음은 자라나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 되며 자라나는 힘은 오히려 씨앗 쪽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 오카는 학문도 예술도 직관의 힘에 기초를 두며 수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과정에서 예술과 문학을 통해 정서를 배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합니다. 수학의 목표는 참 속의 조화이며 예술의 목표는 아름다움 속의 조화로 거기에서 기능하는 것이 정서이다. 비슷하게 조화롭다는 부분에서 통하는 면이 있으나 아름다움 속의 조화를 우리는 더 감지하기 쉬우므로 참 속의 조화가 어떤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말합니다.
저도 왠지 모르게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열대 우림에서 야생 고릴라를 관찰하는 영장류 필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수학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학문처럼 보이지만 고릴라의 생태나 행동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데도 정서가 중요한 듯합니다. 고릴라는 19세기 중반 서방인에 의해 발견된 후 100년 이상 잔인한 성격을 지닌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야수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는 양손으로 번갈아 가슴을 두드리는 드러밍이라는 행동이 싸움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릴라 무리 속에 들어가 관찰해 보니 드러밍은 자기주장의 표현으로 오히려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을 말살하려는 사악하고 과도한 공격성이 자연계에서 발전할 리 없다는 20세기에 태어난 새로운 자연관, 정서적인 확신이 오해를 풀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인간에게도 향해져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탄생했습니다. 저는 드러밍이 가부키의 '미에(무대에서 연기가 진행되는 어느 한순간에 배우가 정지 상태로 눈을 부라리거나 손이나 발에 힘을 집중시키는 연기수법)'와 흡사하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가부키에서 '미에'를 연기하는 장면의 의도는 상대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이기려는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지 않으려는 자세'이며 고릴라가 승패를 가르지 않고 체면을 지키는 데 연연하듯, 그것이 고릴라 사회성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계통적으로 가까운 유인원의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 논리가 아니라 빼어난 예능으로 체현되는 몸놀림을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예술학부는 없지만 예술 활동은 활발합니다. 교토대학교향악단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으며 지금까지 많은 탁월한 지휘자와 연주자를 배출해 왔습니다. 음악에 매진하면서 학문의 세계에서 활약하며 연구상 중요한 힌트와 영감을 얻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1200년 역사를 지닌 고도에 자리잡고 있어 수많은 예술 작품과 공들인 디자인의 건축군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장인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더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밤낮 없이 절차탁마하고 있습니다. 이를 피부로 느끼면서 교토대학 연구자들은 창의적인 학문에 이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대학 연구를 산업계 발전으로 연계시키는 데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으나 교토대학은 사회에 바로 도움이 되는 연구만을 장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교 이래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을 전통으로 독창적인 정신을 함양해 왔습니다. 이는 다양한 배움과 새로운 발상에 의한 연구 창출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전문성 높은 연구의 길에 들어서게 될 텐데 이는 좁은 길을 따라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학우들,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대화를 통해 자기 발상을 연마하는 것이 진리의 길로 통하게 됩니다. 오늘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한 여러분도 언젠가는 자기 전문이 아닌 다른 학문 영역에 눈을 돌리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에 필적하는 눈부신 활약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흥미가 이끄는 대로 연구 생활에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토대학은 그에 걸맞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36개 유닛이 있으며 학제적으로 다양한 교육/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과, 연구소, 연구센터가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니 아무쪼록 참여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하고 창의성을 고양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또 박사 학위를 따고 실천적인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5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종합 생존학 시슈칸(思修館), 글로벌 생존학 대학원 연계 프로그램, 충실한 건강장수 사회를 구축하는 종합 의료 개발 리더 육성 프로그램, 디자인학 대학원 연계 프로그램, 영장류학/와일드라이프 사이언스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이 있으며 각각 연계 대학원이 지정되어 있으니 아무쪼록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최근에는 데이터 변조나 표절 등 논문 제작과 관련된 수많은 부정 행위가 지적을 받으며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연구 윤리를 지키며 독창성 높은 연구를 수행해 커다란 성과를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일본에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생이 산업계에 취직하기 어렵다고 여겨져 왔으나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이 국제화되어가는 가운데 박사 학위를 지닌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원 재학 중에 기업의 실천적 현장을 아는 것이 중요하므로 본교도 산학 협동 이노베이션 인재 육성 컨소시엄 사업의 일환으로 많은 기업들이 참가한 중장기 인턴십 및 매칭을 진행 중입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산업계 현장을 경험하고 자신의 역량과 연구 내용에 맞는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합니다. 또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역량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최고 수준 대학들과 복수학위 및 공동학위를 늘리고자 합니다. 현재 교토대학은 런던, 하이델베르크, 방콕에 해외 거점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 대학들과의 연계를 강화시키고 있으며 올해는 북미에도 거점을 설치해 대학 간 교류의 장을 늘려갈 생각입니다. 이미 교토대학의 많은 부국들은 전 세계에 연구자 교류 네트워크 및 거점을 두고 있으며 이들 거점을 활용하며 공동 연구 및 학생 교류를 촉진시켜 국제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제고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처럼 교토대학은 교육과 연구 활동을 더욱 내실화해 학생 여러분이 안심하고 알찬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한 지원책으로 교토대학기금을 설립했습니다. 오늘도 가족 여러분께 이 기금에 대한 안내 자료를 나눠 드렸습니다. 입학 기념 특별 기획도 마련되어 있으니 아무쪼록 나눠드린 안내 자료를 봐 주시고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