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졸업식 축사(2016년 3월 24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876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명예교수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토대학이 1897년 창립되어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19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02,912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입학한 이래 어떤 학생 생활을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디 지금까지 몇 년간 교토대학에서 지낸 나날들을 떠올려봐 주십시오.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고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제가 교토대학에서 보냈던 1970년대는 일본이 크게 바뀌려던 시대였습니다. 입학한 해에는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열려 전 세계 과학 기술이 서로 경쟁하듯 전시되고 새로운 문명과 우주에 대한 꿈이 커다랗게 꽃폈습니다. 동시에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싸고 학생운동이 과격한 정치 투쟁으로 발전해 ‘우치게바(조직 내부 당파 간 폭력적 사상투쟁)’와 테러 등 비참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생협 식당에서 TV를 보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할복 자살을 알리는 뉴스가 나와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은 아직 없었지만 한 시대가 끝났다는 확신을 안겨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일본에, 그리고 대학에 배울 것이 남아 있나 속으로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 시절에 새로운 지식을 얻는 원천은 영화와 책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졸업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크게 흥행했습니다. 미국 대학을 갓 졸업한 벤이 고향에서 다시 만난 어릴 적 친구 엘렌. 그 엘렌의 어머니와의 불륜과 엘렌과의 사랑의 갈등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신비로운 멜로디를 타고 우리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벤을 거절한 엘렌이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려던 찰나 벤이 뛰어들어가 마음을 바꾼 엘렌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엔딩 장면으로 끝나는데 버스에 올라탄 두 사람을 바라보는 노인들 눈이 인상적입니다. 세상의 상식을 깨부수고 부모 품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전통과 윤리의 벽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주는 따뜻한 사회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는 바로 일본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도 공통된 문제였습니다.

당시 학생 대부분이 읽었던 시바타 쇼(柴田翔)의 ‘청춘’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도쿄대생인 주인공이 헌책방에서 H라는 작가의 전집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사로잡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헌책방 단골이었던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알기도 전부터 책이 나에게 오고 싶어하는, 작가가 엮은 이야기의 세계가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책을 열면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누군가가 그어 놓은 밑줄과 손글씨 메모가 눈에 들어와 뜻하지 않게 그 책과 가까웠던 독자와 만나게 됩니다. ‘청춘’의 주인공도 구매한 H 전집에 찍혀 있던 책도장을 통해 사귀던 여자친구, 함께 정치 운동을 하던 동료와의 관계를 돌아보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 때 진지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방법은 대화, 그리고 편지였습니다. 연구 생활로 들어선 동료가 주인공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딱 하나 지키려고 다짐한 일이 있어. 그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 일이라도, 아무리 모양이 잘 잡혀 있어도, 그냥 내 스스로 생각해 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수긍이 가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는 거야.” 대학에 들어온 후 저는 몇 번이나 이 말을 되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바타 쇼와 같은 나이로 시인이며 극작가였던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가 있습니다. ‘성냥 긋는 순간 바다는 안개 자욱해 몸 던질 만한 조국은 있을까’라는 시에 마음 울림을 느끼고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봤다는 사람이 당시에는 많았습니다. 제 학생 시절 일본의 모습은 크게 변모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댐 건설이 시작되어 많은 마을이 수몰되었고 주민들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전국에 고속도로와 슈퍼임도가 건설되어 산과 숲이 분단되었고 조림정책으로 인해 활엽수림은 삼나무나 전나무로 이루어진 단층림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시에는 새로운 문화가 넘쳐났으며 잇달아 다양한 가치관이 유입되고 태어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데라야마는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책을 써서 젊은이들에게 상식과 전통을 의심하고 일상 생활 뒤에 숨겨진 여러 계략을 간파하라고 장려했습니다. 저도 대학만이 배움의 장이 아니라 캠퍼스 밖에서 앞으로의 세상을 물들여갈 다양한 징후를 알아채야 한다 느꼈습니다.

개학한 이래 교토대학은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을 전통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전통을 한껏 활용하며 시대의 바람을 느껴 왔습니다. 저를 눈뜨게 만든 것은 학문 분야의 벽을 넘어 대화를 나누는 여러 자율 세미나와 연구회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저는 서로 다른 여러 생각을 만나고 달리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무렵 읽은 책 중 가장 크게 마음을 뒤흔든 것은 이타니 준이치로(伊谷純一郎)의 ‘고릴라와 피그미의 숲’이었습니다. 독립을 눈 앞에 둔 아프리카 콩고에 홀로 건너가 야생 고릴라를 쫓아 밀림 깊숙이까지 자기 발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체험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이라는 작은 나라의 문화가 아니라 고릴라와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존재와 유래였습니다. 저는 인간이면서도 그 유래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게다가 부끄럽게도 그 책의 저자가 제가 속한 이학부의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바로 저는 이타니 교수님을 찾아 뵈었고 아프리카 벌판에서 인간의 유래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보낸 몇 년 동안에도 세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입학하신 무렵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고 방사능에 오염되어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역이 일본에 나타났습니다. 에너지에 대한 생각과 원전의 도움으로 누려 왔던 풍요로운 생활을 큰 폭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환경 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급속도로 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인간의 활동에 다양한 규제가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민족과 종교에 의한 대립이 격화되어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각국의 기존 협력 체제와 연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회와 세계의 급속한 움직임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결의를 새로이 다지셨나요?

지식을 얻는 방법도 현대는 저희 시대와는 많이 다릅니다. 1970년 엑스포에서 예측되었던 바와 같이 정보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기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영상이 정보기기를 통해 무료로 유포되며 이제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귀중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메일과 휴대전화가 주요 전달 수단이 되었으며 편지를 쓰는 일은 좀처럼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대화만은 마음을 서로 전하고 논의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낳는 수단으로서 지금도 계속 살아 있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교토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중에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의견만 들어서는 결국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현대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 주제를 거스르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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